요즘 써큘레이터가 흔히 보인다. 은행에 가도 보이고, 빵집에서도 봤다.
서큘레이터는 선풍기의 가까운 친족으로 보이는 녀석인데, 선풍기랑 똑같지 뭘. 자본주의의 기형아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그럴싸하게 영어로 서큘레이터라고 해놓으면 더 그럴듯해서 팔 수 있을 테니까. 디자인 약간 바꾸고, 이름 다르게 붙여서 팔아먹어보려는 얄랑한 상술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이 녀석의 실상에 대해서 좀 알아보게 되었다.
우선 내 지인의 거주지겸 사무실에 써큘레이터가 있다. 내가 자주 들르는 곳이다.
녀석의 써큘레이터는 '보국전자'의 것이다. 구입한지 꽤 된 것인지, 요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찾기가 어려운데, 여전히 현역으로 보인다. 뭐 선풍기도 한 10년씩 쓰는 거니까.
우선 선풍기와 써큘레이터의 가장 큰 차이는 '머리통'이다. 선풍기가 프로펠러라면, 써큘레이터는 제트엔진처럼 생겼다.
캬. 요즘 사람들 똑똑하기도 하지. 선풍기를 제트엔진처럼 디자인해서 더 팔아먹을 생각을 하다니.
수 년 째 사용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선 물었다. 저거 선풍기보다 좋냐?
이야기를 들어보니 녀석이 써큘레이터를 구매한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의 위치가 엿같아서 냉방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녀석의 사무실을 얼추 구현해 보면 아래와 같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곳은 단순한 구조의 투룸이고, 벽걸이 에어컨은 안쪽 방에만 있다. 그런데 에어컨의 위치나 방향이 좋지 않아서, 에어컨을 켜도 두 방의 온도차가 많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어컨을 켜고, 써큘레이터로 공기를 밀어내고 섞어준다는 것.
그런데 그 말이 정말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게, 내가 한참을 머물러 있는 동안 두 방의 온도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물론 에어컨 바로 근처가 가장 시원했지만, 벽 너머 건넛방도 뽀송뽀송 시원했다. 그리고 공기가 순환하는 것이 피부로도 느껴졌다. 직접 바람을 쐰 것이 아니라, 써큘레이터로 인해 출렁이는(?) 공기가 내 피부까지 전해왔다. 와 정말 공기를 돌려주긴 하는구나.
물론 어느정도는 선풍기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내 체감엔 써큘레이터가 훨씬 효과적이다. 써큘레이터가 사거리가 더 길고, 더 단단한 바람을 일으켰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보자. 후~하고 불면 그게 써큘레이터고, 하~하고 불면 선풍기다.
이렇게 써큘레이터는 차가운 에어컨 공기를 건넛방의 깊은 곳까지 쑤셔 넣어주는 작용을 하고 있었고, 그 덕에 냉방효과도 달성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선풍기보다 써큘레이터가 낫다는 거. 인정합니다.
다만 써큘레이터는 소음이 훨씬 컷다. 내가 집에 갖고 있는 삼성전자 선풍기는 정말 조용하거든. 미풍으로 해놓으면 거의 소음은 신경쓸 필요가 없는 수준. 반면에 써큘레이터는 진짜 좀 비행기 소리같은 게 난다. 모터에서는 붕 하는 저음과 윙 하는 고음이 아카펠라처럼 믹싱되어 은근하게 깔리고, 프로펠러에서는 공기를 찢어갈기며 푸우우 하는 소리를 낸다. 뭐랄까, 집 안에 있는데 외출한 기분인 걸? 그래서 실내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청음을 해보자. 이 소리가 널리 깔린다.
이 소음은 철저히 써큘레이터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모터의 소음은 고급모터로 해결한다 한들, 프로펠러와 공기의 마찰음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그게 선풍기보다 훨 시끄러웠다)
만일 비싼 저소음 무풍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면 강한 써큘레이터를 갖다놓음으로써 싸구려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편 충분히 조용할 정도로 바람세기를 낮춰 쓸 거라면, 그건 선풍기가 나을 수도 있다.
아마도 써큘레이터는 허공을 향해 쏘는 용도(공기순환). 선풍기는 사람을 향해 쏘는 것(몸뚱아리 냉각). 용도차이는 확실하다. 물론 써큘레이터를 선풍기처럼 사용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겠지. 바람이 나오는 건 동일하니까. 그래서인지 쇼핑몰을 돌아보니 선풍기같은 저소음 미풍기능을 가진 써큘레이터도 눈에 띈다.
어쨋든 공기를 섞어주는 능력은 내 예상보다 훨씬 우수했다. 듣자 하니 친구의 사무실에 있는 건 저가형 가정용보다는 출력이 강한 제품일 거라 한다. 녀석은 그곳이 거주지이면서 작업장이기도 했기 때문에 소음을 감수하고 구비했다고 한다.
<참고>
아, 그리고 찾다 보니 에어컨 비닐터널이라는 이색 상품이 눈에 띈다.
에어컨 바람을 곳곳에 분배하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다.
영화 도니다코가 생각나는 이 아스트랄한 형태를 보라.
써큘레이터가 후~하고 부는 거라면 에어컨 비닐터널은 인공호흡(후욱후욱~)이다.
한 때 유명했던 한 블로거의 김장비닐 에어컨 확장 썰을 상품화한 것인듯?
세상에 용자는 많고 많다. 그 용자님의 썰 원본.
https://m.blog.naver.com/twoegg33/22132932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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